1. 들어가며
노자는 도(道)를 얘기하면서 도는 영원한 이름이 없으며 심지어 말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도에 관하여 논한 저작인 도덕경(道德經) 제 1장에 나온다.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도) 이 구절이 아마 대표적인 것일 것이다.
노자의 사상은 비밀스런 개인의 영역에서 누구나가 한번쯤은 취해봤을, 아니 유가만큼이나 보편적인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도가사상, 특히 노자가 주장한 ‘도(道)’사상은 실제 치세(治世)에서는 단 한번도 제대로 적용된 적이 없었으면서도 오늘날까지 빼놓을 수 없는 동양철학이자 동양의
道가 만물을 주재 하지 않는 다는 노자의 주장은 당시 사상계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혁명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 고대에서는 하늘에 있는 帝또는 上帝가 이 세상을 지배 한다는 人格天 관념이 있었다. 이러한 관념에서 통치권 기원설이 만들어 졌다.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는 천명을 받았다는
노자의 교사巧詐를 싫어하고 문명을 구사할 줄 아는 지식인들을 싫어했다. 그리고 법가적 사고를 비판하기 위해서 유가를 비판하였다. 超人間世적인 도가의 자연주의 입자에서 볼 때 유가와 법가는 인간세를 긍정하는 入世間主義 이기 때문이다.
『노자』제 1장에서 자기가 내세우고자 하는 도의 개
노자(老子) 또는 노담(老聃)라고 부르게 된 것일까? '노(老)'를 성(氏)이나 이름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노(老)'라는 성은 후세에 생겨난 것이어서 주(周)·진(秦) 시대의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며, 노자를 이로(李老)로 부른 기록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老)'를 형용사로서의 '늙은'의
Ⅰ. 장자의 일생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이다.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 송(宋)의 몽읍(蒙邑 : 河南省商邱縣 근처) 출생.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나 맹자(孟子)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한다. 관영(官營)인 칠원(漆園)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나
1.1. 장자
1.1.1. 생애
1.1.1.1. 배경
새로운 사상은 일정한 정치적, 경제적 조건하에서 만들어진 시대정신의 결정체이며, 사마천의 말을 따르면 많은 사상가들이 시대 속에서 “마음속에 맺힌 바가 있고, 그 도를 통할 수 없었기에 물러나 글을 써서 마음을 풀어냈고, 자신의 생각을 글에 담아서 스스로
도 있으나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는 허신(許愼)설을 이용하여 「담(聃)이란 귀가 늘어진 것을 뜻하여 그래서 이름을 이 자를 담이라 한 것이다. 자를 백양이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다. 주(周)나라 왕실의 수장실(守藏室)의 사(史)를 지냈다. 노자는 도(道)와 덕(德)을
도 한다. 그러나 성현들이 말해왔던, 요순(堯舜)시대와 같은 이상적인 세계와는 달리 많이 어지러워진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타락한 윤리와 혼란스러운 가치세계를 재정립하고자 옛 성현의 가르침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봄은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금번 조원들은 노자의 사상을 통해 노
1. 공자 - '답게' 하는 정치
공자는 사람다움의 사회적 실현을 통해 당시의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공자에게 정치란 사람답게 되도록 바로잡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로잡는 것일까요?
제나라 임금이 공자에게 정치가 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